열두 띠 이야기
옛날 옛날, 아주 까마득한 옛날에 하느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단다.
하늘에는 해와 달을 걸어 놓고, 땅에는 온갖 풀과 나무,동물들을 퍼뜨리고,바다에는 갖가지 물고기들을 풀어 놓았어.
물론, 우리 사람도 정성껏 빚어 불어넣었지.
"하느님,하느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사람들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아우성치고 있었어.
"아하! 이런!"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시는 걸 깜박 잊었던 거야.
한지만 하느님은 너무나 지쳐 꼼짝도 할 수 없었어.그래서 세상으로 내려갈 열두 명의 신들을 뽑기로 했지.
"누가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겠느냐?"
가장 먼저 쥐신이 조르르 달려왔어.
쥐신은 세상의 모든 쥐들을 다느리는 신이야.
"사람들은 우리 쥐들처럼 부저런해야 해요.그래야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으니까요."
세상의 모든 소를 다스리는 소신도 뒤질세라 성큼성큼 걸어왔어.
"아무리 부지런해요,힘이 없다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잖아요.사람들은 황소처럼 굳센 힘을 길러야 해요."
하느님은 쥐신과 소신을 세상으로 내려 보냈어.
"힘만 세면 뭐합니까?"호랑이신이 으르렁대며 뛰어왔어.
"힘든 세상을 살아가려면 저처럼 용감해야 한다고요.우리 호라이들은 두려움을 모른답니다."
호랑이신은 호랑이들을 다스리는 신답게 우렁차게 말했어.
"용감하기만 하면 다예요?"토끼들을 다스리는 토끼신이 뛰어왔어.
"옳고 그른 것을 가려낼 줄 알아야지요.그러지 못하면 늘 싸움만 할 텐데요."
하느님은 호랑이신과 토끼신도 세상으로 내려 보냈어.
이번에는 물을 다스리는 용이 휘이익 날아왔어.
"사람들은 물이 없으면 살수가 없어요.그러니 제가 가서 물을 이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겠어요."
그러자 세상의 모든 뱀을 다스리는 뱀신도 뒤따라왔어.
"사람들은 끈기와 참을성을 길러야 해요. 모든 멋진 일은 끈기와 참을성이 있어야 이룰 수 있으니까요."
하느님은 용신과 뱀신도 세상으로 내려 보냈어.
"하지만 언제까지나 참기만 할 수는 없잖아요?
씩씩한 말들의 신인 말신이 달려왔어.
"사람들은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아야 해요.그러면 쩨쩨하게 다투지 않을 거예요."
"세상이 아무리 넓다 해도, 사람의 욕심을 다 채울 순 없어요."
순한 양들의 신인 양신도 가만가만 걸어왔어.
"그러니까 사람들은 서로 나누고 양보할 줄 알아야 해요."
하느님은 말신과 양신도 세상으로 내려 보냈어.
뒤이어 원숭이신이 촐랑대며 뛰어왔어.
"뭐니뭐니 해도 사람들은 꾀와 재주가 있어야 해요.그래야 편리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원숭이신은 세상의 모든 원숭이들의 왕이지.
"재주만 많으면 다예요?" 닭들의 왕인 닭긴도 되똥되똥 걸어왔어.
"사람들은 하느님이 정해 놓은 시간에 따라 살아야 해요.일어날 때와 잠들 때, 일할 때 놀 때를 가릴 줄 알아야지요."
하느님은 원숭이신과 닭신도 세상으로 내려 보냈어.
세상의 모든 개들의 우두머리인 개신이 헐레벌떡 달려오며 소리쳤어.
"시간보다 더 중요한 건 믿음이에요. 서로서로 믿고 따르면 모두가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다 좋아요.하지만 너무 서두르면 일을 망치기 쉬워요.느긋한 마음으로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어요."
세상의 모든 돼지들의 우두머리인 돼지신이 열두 번째로 느릿느릿 걸어왔어.
하느님은 개신과 돼지신도 세상으로 내려 보냈어.
이렇게 열주 신들을 세상으로 내려 보내 놓고, 하느님은 다시 편안하게 잠을 자려고 했어.그런데 그 때 잠꾸러기 고양이신이 뒤늦게 달려왔어.
"잠깐만요!하느님,저도 보내 주세요.지는 사람들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도록 하겠어요."
그러자 하느님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어.
"이제 됐다.보아라. 세상이 편안해졌지 않으냐?"
그러면서 하느님은 세상을 내려다보았어.열두 신들은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법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어.
쥐신은 부지런히 저축하도록 가르치고,소신은 굳센 힘을 기르게 하고,호랑이신은 용기를 북돋아 주었어.토끼신은 옳고 그른 것을 가려 주고,
용신은 구름을 불러 비를 뿌리고,뱀신은 참을성을 길러주었지.말신은 씩씩하게 넓은 세상을 보여 주고,양신은 너그럽게 나누어 갖는 마음을 심어 주고,
원숭이신은 여러 가지 재주를 가르쳤어.
닭신은 새벽마다 사람들을 깨워 주고,개신은 서로 믿게 하고,돼지신은 느긋하게 사는 법을 알려 주었지.
세상은 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웠단다.
이제 하느님은 흐믓하게 잠자리에 들었어. 그런제 막 잠이 들려는데,우당탕퉁탕! 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어.
"도대체 또 무슨 일이야!"
하느님은 벌떡 일어나 세상을 내려다 보았지.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된 건 다 내 덕분이야! 그러니까 내가 대장이 되어야 해."
"아냐,내가 대장 할 거야."
이번엔 열두 신들이 서로 자기가 대장이 되겠다며 티격태격 다투고 있는 거야. 세상은 다시 뒤죽박죽이 되었지.
하느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시끄럽다 조용히 해.
하느님이 열두 신들에게 소리쳤어.
"그렇게 다투려거든 당장 하늘나라로 돌아오너라!"
그러자 열두 신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입을 꾹 다물었지.
"너희들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었다.모두 똑같이 훌륭한 일을 했어. 그러니 해마다 한 명씩 돌아가며 대장을 맡거라."
그런 뒤에 하느님이 한마디 덧붙였어.
"만약 또 다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면 고양이신과 바꾸겠다!"
이 말에 가장 기뻐한 건 고양이신이었지.
하느님은 열두 신들에게 대장을 맡을 차례를 정해 주었어. 쥐신,소신,호랑이신,토끼신,용신,뱀신,말신,양신,원숭이신,닭신,개신,돼지신 차례로...
처음에 세상으로 내려간 차례대로였지. 이 때부터 세상에는 열두 띠가 생겼어. 소신이 대장이 되는 해는 소의 해,개신이 대장이 되는 해는 개의 해가 된거야.
사람들도 모두 자기 띠를 타고나게 되었지.말의 해에 태어나면 말띠,돼지의 해에 태어나면 돼지띠.
너는 무슨 띠야?
참,그 뒤 잠꾸러기 고양이신은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열두 신들이 일을 잘하는 지 살피고 다녔다는구나.
지금도 밤중에 파란 눈빛을 번뜩이며 어술렁거리는 고양이들을 볼 수 있지.
바로 고양이신이 시켜서 그러는 거래.하지만 아직까지 고양이신은 열세 번째 신으로 남아 있단다.
[출처:'열 두띠 이야기',정하섭,아춘길 그림,2002,솔거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