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술이 제일 좋은가
'술을 마시지 않는 인간으로부터는 사리분별을
기대하지 말라.'
라고 말한 건 키케로인데,
고주망태 술꾼들에게는 참으로 위안이 되는 말일 것 같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속담에 이르되,
다음과 같은 경지의 술꾼들 말이다.
'첫 잔은 갈증을 면하기 위하여,
둘째 잔은 영양을 위하여,
셋째 잔은 유쾌하기 위하여,
넷째 잔은 발광하기 위하여 마신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볼 때 키케로의 주장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술을 좋아하는 사리분별이 분명한 사람도 많지만,
술을 잘 마시면서 사리분별이 개차반인 인간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술을 전혀 못 하면서 사리분별이 확실한 사람들도 많고,
술을 안 마셔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사리분별이 엉망진창인
사람도 많다.
'술과 인간은 끊임없이 싸우고 끊임없이 화해하는 사이 좋은
투사와 같다.항상 진 쪽이 이긴 쪽을 포옹한다.'
보들레르의 이 말은 참으로 장엄하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싸우고,
끊임없이 화해하고...
죽을 때까지...
'술이 없는 곳에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이건 에우리피데스의 말인데 관념적으로는
[그것도 술을 즐기는 사람의]그럴 것 같지만,
경험적으로는 절대로 아니다.
'음주는 일시적인 자살이다.'
이건 러셀의 주장인데,
이 사람은 술을 전혀 마셔 보지 않고
하직한 것 같다.
내가 단언하건대,
음주는 일시적인 자살이 아니라 '부분적인'자살이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
이 유명한 말의 출전은 『법화경』이다.
금욕주의자들의 책에 이런 말이 있는 게 재미있지 않은가?
음주를 저렇게 먹지게 표현할 수 있다니,
경험이 없는 자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다.
틀림없이 술깨나 퍼마셔 본 사람이 한 말일 것이다.
따라서 자기는 실컷 퍼마셨으면서,
'술은 지옥의 문이니......'
어쩌고 하며 충고하는 건 치사한 짓이다.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자.
나는 칸트의 다음 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술은 입을 경쾌하게 한다.
술은 마음을 털어놓게 한다.
그리하여
술은 하나의 도덕적 성질,
즉 마음의 솔직함을 운반하는 물질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때로 솔직함의 운반이 지나쳐서,
위장마저 밖으로 꺼내려고 해서 탈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술이 제일 좋은 것일까?
디오게네스에 의하면 정답은 이것이다.
'남의 집 술.'
요즘 말로 하자면,
'남이 사주는 술'정도가 되겠다.
-이상운 이야기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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